안중근 토마스 의사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치다

안중근 토마스 의사(1879년~1910년)는 박해 시대의 순교자들 못지 않은 인물이다.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선교 순교자들의 영성이 신앙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했다. 이는 그가 민족애와 깊은 신앙심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며,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조국을 구하고자 하는 염원을 갖고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행동이지만 그는 모든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는 천주교 신자의 독립 운동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안중근 의사는 살인자로 매도되어 성사도 받지 못했고, 빌렘 신부와 면회하는 일도 방해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 의사는 사형되기 전 자신의 장남인 분도를 사제로 만들어 달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신앙심이 돈독했다. 뮈텔 주교는 안중근 의사를 외면했지만,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신앙으로 그것을 넘어선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그동안 한국 교회사에서 외면 받아왔다. 그가 가톨릭 신자로 복권된 것도 서거 100주기인 2010년에 와서야 이루어진 일이다.




안중근 의사



조선을 넘어 동양 평화를 향해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삶과 그가 쓴 동양 평화론에서 그가 역사와 민족 앞에 밝힌 신앙 고백과 민족애, 그리고 세계 평화에 대한 뚜렷한 신념을 읽을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예언자적 통찰을 지니고 있었고, 민중과 민족을 사랑하는 깊은 신앙심과 민족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역사성 없는 신앙 의식을 보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중근 의사는 자신부터 먼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교육 운동과 국채 보상 운동과 같은 계몽 운동에 나섰고, 이는 더 나아가 의병 활동까지 이어졌다. 그의 신앙은 단지 성당 울타리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역사 현장과 마주하였다. 또한 민중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여 자신의 신앙을 증거했다. 이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모범적으로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안중근 의사는 평신도 사도직의 의미를 새롭게 열어젖힌 선구자라고도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러한 신앙은 오늘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 그리고 민족의 앞길을 밝혀 주는 모범이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에게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 민족 통일과 민주화, 인간화와 복음화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는 시대의 징표를 밝혀 주는 횃불과도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한 문제도 단지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 이는 성경 · 신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구약 성경에서 다윗은 적장 골리앗을 살해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성왕이라고 전한다. 모세도 동족을 학대하는 감독관을 살해했다. 그러나 그는 민족 파스카의 지도자로서 구약의 중추적인 인물이 된다.

독일 신학자인 본회퍼 목사는 신앙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는 나치 정권에 맞서 신앙인으로서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히틀러 암살을 계획했다는 죄로 1945년에 교수형을 당했다. 이런 그의 삶은 교회의 역할과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을 일깨워 준다. 본회퍼는 감옥에서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어떤 미친 운전자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인도 위로 차로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인 제 임무는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 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자동차에 올라타서 그 미친 운전자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2015년 5월에 시복된 엘살바도르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독재 정권이 사람들을 살해하며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자 이에 저항했다. 그리고 1980년 3월 24일 저녁 미사를 거행하던 중 성당에서 군부 독재 정권이 고용한 암살자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살해되기 전날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울러 날마다 더한 고통을 받아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은 민중의 이름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요구하고 명령합니다. 탄압을 중지하시오!"

또 그는 미사 강론 중에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무죄한 사람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에 대해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부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에서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마친 뒤 로마로 돌아가며 로메로 대주교의 시복에 어떠한 교리적 문제도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5년 2월 3일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아마토 추기경과 독대하면서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순교'로 규정하고 그와 관련한 교령 선포를 승인하였으며, 5월 23일에 시복하였다.

로메로 대주교는 사제로서 백성이 군부 독재의 착취와 억압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아파했고, 가난한 백성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람이기에 교회가 선택해야 할 이들임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그는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민중의 신음을 대변하였으며, 또한 '평화를 호소하는 자유의 목소리'가 되었다. 로메로 대주교는 동료 사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선택한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신부님들은 사랑의 힘을 믿지 못하시는지요? 그들이 나를 죽일 때 나는 엘살바도르 사람들의 가슴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제가 흘린 피는 자유의 씨앗이 되고 희망이 곧 실현되리라는 신호가 될 것입니다. 사제는 죽을지라도 하느님의 교회인 민중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순교를 예감했고 각오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의 행위가 전쟁 중에 독립군 대장으로서 적군 대장을 물리친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전투가 치열한 전쟁터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중근 의사는 일제 강점기하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보며 이것이 바로 전쟁터라고 생각했고, 우리 민족을 구하기 위해 앞장선 것이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 역시 우리 선조 순교자의 영성을 이어 죽음으로 민족애를 실천한 사랑의 순교자이며, 복음을 증거한 진리의 증거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회사가 외면한 두 인물

황사영과 안중근 의사, 이 두 순교자는 공통점이 있다. 황사영은 한국의 역사에서 외면받은 사람이고, 안중근 의사는 가톨릭교회에서 외면받은 사람이다. 황사영은 백서를 집필하여 반역죄로 처형되었으며, 안중근은 조선을 침략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죄로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신앙을 위해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노 황사영'과 신앙의 규범을 어기고 민족 자존과 동양 평화를 위해 살인을 한 안중근'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다. 이 두 순교자는 정치와 종교, 민족과 종교, 신앙과 애국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로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많은 선조 순교자들 가운데서도 특히 황사영과 안중근 의사는 오늘을 사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신앙의 방향을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자발적인 평신도 신앙이다. 그들은 교회 지도자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신앙관을 제시했다. 자신을 내던지는 결단력 있는 신앙을 보여 준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처럼 세상과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길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때 비로소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사에는 위대한 순교자들이 무수히 많다. 시복 시성이 된 선조 순교자들 뿐만 아니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성직자 중심으로 출발하지 않은 한국 교회이지만 그리스도 신앙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인간을 구원하는 진리에 대한 헌신과 봉건적 신분 질서를 뛰어넘는 해방에 대한 동경을 바탕으로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골고타 언덕 십자가에 매달려 처참히 피를 흘리신 에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바로 그 마음이었다. 초대 교회가 가졌던 그 마음으로 우리 한국 교회가 태동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탐욕 아래서 인간성이 상실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교회는 앞길을 제대로 비추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은 성직자가 아니라는 대답으로 회피하지 말자. 우리의 선조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삶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대답을 피하지 않았고, 자신을 헌신하는 길로 나아갔다. 우리는 그 마음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황사영과 안중근은 바로 이러한 마음을 대표하는 이들이기에 우리 신앙의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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