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와 선교

 죽음보다 강한 믿음과 사랑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황일광 시몬 복자는 천민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던 백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우들에게 이렇게 말하길 즐겨 했다.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스 시인인 콘스탄틴 카바피도 <이타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요한 것은 여행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이는 비록 고단하고 오랜 여정일지라도 길 위에서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한국의 순교자들은 천당을 죽은 다음에 도달할 여정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이뤄지는 곳으로 여겼다. 그것은 파스카의 여정으로, 부활의 신앙으로 현세를 살아가는 힘이었다. 황일광의 천당도 그러했다.

황일광은 나라가 버젓이 금지하는 천주교를 믿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신앙의 진리를 따라 목숨을 내놓았다.

"만 번 더 괴로움을 당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겠으니, 저를 마음대로 하십시오."

황일광 복자뿐만 아니라 박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게다가 선교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박해를 받는 시대에 선교란 인간 구원에 대한 사랑과 목숨을 건 헌신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헌신적인 삶과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고문하던 관리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였다.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 속에는 매우 특이한 사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신자들을 죄수로 삼아 혹독한 고문과 심문을 가했던 포도대장이나 관장, 포졸, 옥리들이 죄수인 순교자들에게 감복하여, 관직을 그만두거나 신자가 된 경우가 많다. 우리 선조 순교자들은 선교사들을 도와 사목, 성경 해설, 교리 등을 다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순교자들은 체포되고 난 후에도 관장의 심문대나 고문대 앞에서까지 포교 활동을 하였다.

그들이 관장 앞에서 변론한 교리 해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교리 지식이 해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많은 비유를 곁들여 교리를 해설하여 관장들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교리 변론의 대표적인 호교론으로 정하상 바오로의 상재상서는 대단히 유명하다.

우리 순교 선열들의 교리에 대한 지식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배움이나 연령, 주변 환경, 그리고 남녀를 불문하고 대단히 깊었고 철저했다. 이러한 열정과 신앙심으로 한국 순교자들은 모두가 한결같고 그 극심하고 기다긴 박해를 견디면서 하느님을 증거했다.

한국 교회사에서 기적같이 놀라운 사실은, 순교하여 죽은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신자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1801년 수많은 순교자를 냈던 신유박해로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후 한국 교회는 성직자가 한 명도 없었으나 신자들은 30여 년을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숨어 살면서도 교회를 계속 유지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교회 안에 활동하는 성령의 역사와 기적을 너무도 선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가히 '순교의 피는 복음의 씨앗'이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우리를 타작(살해)할 때마다 즉시 우리는 더 많은 숫자로 불어난다. 그리스도인의 피는 그 씨앗이다."

한국의 순교자들이 보여 준 신앙의 열정은 봉건적 미망에 젖어 있던 민족에게 던진 한 줄기 빛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교는 조선 사회에 던진 정신적 · 영적 반란이었다. 자신의 목숨마저도 기꺼이 내놓는 복음 정신의 체현, 인간에 대한 사랑과 헌신 등으로 그들은 시대의 징표를 읽고 선도해 갔다. 이 점은 차별과 배제에 익숙해 있던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는 충격이었고, 민중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꿈이자 여행이었다.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에 걸려 있는 성화




선교의 모범인 순교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7월 7일에 있었던 미사 강론에서 순교와 선교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먼저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교의 첫 번째 요소로 '위로의 기쁨'을 뽑았다. 선교가 풍요로운 결실을 맺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하느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도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분명히 확인하고 위로를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피 흘리는 순교의 길을 나선 우리의 신앙 선조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분들은 하느님꼐서 주시는 위로의 기쁨을 알았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사 40,1)이라는 하느님의 요청은 엄혹한 시련을 인내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기쁨이었다.

두 번째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선교가 풍요로운 결실을 맺으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교 영성을 따르는 신앙생활이야말로 십자가의 삶을 사는 신앙생활이다. 십자가의 삶은 신앙의 신비로서 예수님의 파스카, 곧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현재에 사는 삶이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14)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주님의 죽음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면, 십자가의 고난과 어둠에 빛나는 구원의 빛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파스카 신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죽음이라는 어둠을 통과한 빛의 승리는 파스카의 신비로서 교회를 지탱하는 살아 있는 선교의 보증이다. 그리스도 없는 십자가는 사랑이 없으며, 십자가가 없는 그리스도는 공허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살아야 하는 운명은 우리 선조 순교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자랑할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에 걸려 있는 성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운명을 잘 보여 준다. 이 그림은 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이 조선에 파견되는 장면인데 이 장면에서 가족들과 친지들, 그리고 교우들은 파견되는 신부님의 발에 친구를 하고 있다. 이렇게 파견되는 신부님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운명을 각오하고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시복 · 시성이 되어 성인이 될 분들이기에 신자들은 이 그림럼 떠나는 그들에게 미리 친구했다고 한다.

이는 자기 운명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셨던 예수님의 모습과도 같다. 마리아가 비싼 순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리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리자(요한 12,1-8참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세 번째 요소는 '기도 생활'이다. 선교가 풍요로운 결실을 맺으려면 기도와 함께하는 생활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도는 주님과 연결되는 고리다. 교회가 우리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그분의 뜻을 올바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관계가 없는 선교는 인간의 사업인 '비즈니스'에 불과하다고 했다.

만일 우리 순교자들이 하느님과 관계 속에 있지 않았다면 형장의 이슬이 되기 전에 이미 다른 삶, 즉 배교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과 연결된 끈이 끊어지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하느님과 신앙인을 단단히 연결해 주는 끈이 바로 기도다. 박해의 칼날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원을 보증해 주고 세상 끝날까지 주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이 바로 기도하는 삶 덕분이었다.



박해와 위로 사이에 있는 교회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직후부터 교회가 세상의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로 사이를 순례하는 교회"(아우구스티노 성인)는 상처 입고 죄로 물들어 하느님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향해 나가야 한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교회', '출발하는 교회', '야전 병원으로서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교회가 될 때 사제들은 "양냄새가 나는 목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단 사목자에게만 해당하는 사명이 아니다.

순교자들은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로 사이를 순례하는 교회'의 모범을 보였다. 물론 순교자들에게 닥친 세상의 박해와 하느님의 위로는 결코 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도전에 끊임없이 맞서며 세상의 주변에서 중심을 위협했다. 그래서 박해 시대가 길어질수록, 피의 순교가 계속될수록, 천주교 신앙은 새 세상을 향한 민중 운동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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