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 성가정 영성과 순교 영성

 

나자렛 성가정 영성

나자렛 성가정 영성도 역시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 다시 말해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고 그분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영성이다. 이 영성 안에는 강생과 순례, 파스카적이고 예언적인 차원이라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먼저, 나자렛 성가정 영성의 핵심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데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생의 교리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사회생활에서 강생의 의미를 귀담아듣고 실천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는 선교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선교 강박증이란 내가 믿고 변화되기 전에 선교를 먼저 생각하는 조급증을 뜻한다. 이는 교세를 키워야 한다는 성장주의적 교회관의 폐해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선교하기에 앞서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선교의 출발점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시대의 징표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인간의 역사와 사회 안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하지만 이 세상은 하느님의 모습을 찾기는커녕 그분의 말씀을 듣기에도 너무나 소란스럽다. 침묵과 고요 안에서 성찰하고 기도할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모두가  물질만능, 인간성 상실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으며, 하느님의 자리는 자본, 즉 돈이 차지했다.

강생의 영성은 시대와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르려는 신앙적인 통찰이다. 우리 신앙 선조들에게 들렸던 하느님의 음성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계급 사회와는 결이 달랐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듣고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르며, 역사와 세상 안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믿음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순례의 영성, 파스카의 여정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로 함께 걸어가는 동반과 배려의 의미가 부각된다. 그 동반과 배려의 의미는 '성가정'이라고 불리는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들 예수님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요셉과 마리아는 부모로서 무한한 배려와 관심으로 아들 예수님의 길을 지켜 주었고, 마리아는 마침내 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눈앞에서 보게 되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안으면서도 십자가의 길까지 동반했다.

또한 예수님이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십자가의 표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인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적혀 있었다. 이처럼 나자렛은 예수님이 죽는 순간까지도 기억되었다. 따라서 나자렛과 십자가는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영성적 상징이다. 나자렛 예수님을 찾는 길에는 십자가가 필요했고, 십자가를 찾아가는 길에는 나자렛의 삶이 있다.



성가정의 모범을 따른 삶

박해 시대를 살았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도 가정 안에서 신앙을 물려주었다. 그들은 산속에 지은 움막 안에서 겨울을 나고, 화전을 일구어 얼마 되지 않는 양식으로 하루를 살아가며, 자신이 고백하는 신앙을 지켜 갔다. 배교를 하고 편하게 살고자 하는 유혹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모들은 움막 안에서 굶주림에 우는 어린아이들을 기도로 달랬으며, 자녀들은 집안의 신앙을 먹고 자라면서 자신의 신심을 키워 나갔다. 교리 서적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시대라 부모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기도문과 교리 내용, 순교자들에 대한 이야기, 천주가사(天主歌辭)의 내용을 자녀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 주었다. 신앙의 대물림, 신앙의 전수를 위해서 그들은 스스로 극기하는 삶의 모범을 보였고, 가르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함께하는 신앙을 실천하였다. 이렇듯 우리 선조 순교자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의 가정을 나자렛 성가정으로 꾸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한국 선조 순교자들의 신앙 못자리는 성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124위 순교 복자와 103위 순교 성인을 살펴보면 부부, 형제, 자녀 등 혈연관계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가정 내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며 한국 선조 순교자들이 성가정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103위 시성 추진 당시 청원인으로 활동한 수원교구 손골 성지 담당 윤민구 신부는 "한국 교회처럼 공적으로 공경하는 복자와 성인이 대부분 가족과 혈연으로 얽혀 있는 예는 세계 교회에서도 거의 찾기가 힘들다."라고 하면서 "이는 오늘날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증명해 주는 귀감"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종교 교육학자 토마스 그룸 교수도 강연회를 통해 "신앙의 씨앗을 뿌리는 곳은 결국 가정"이라면서 신자 부모들은 단지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녀들에게 꾸준히 신앙을 권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통해 가정을 성가정으로 가꿔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방상근 박사는 "박해 시대 신자 가정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신앙 교육이 행해졌나 하는 자세한 자료는 없으나 신앙의 지속성을 유지시켜 준 가정 교육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라고 하면서 "124위 순교복자와 103위 순교 성인의 상당수 집안에서 3~4대에 걸쳐 순교자를 배출했고, 또 배교했다가도 다시 교회로 돌아온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자들이 항상 아침 · 저녁 기도와 묵주 기도를 했다는 베르뇌 주교의 증언처럼 그 원천은 분명 가정 안에서의 기도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가정이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상황에서 가정을 바로 세우고, 또 가정이 집안 교회로 신앙의 보금자리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가정에서 신앙 교육, 특히 기도 생활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순교 복자와 성인들의 삶을 새롭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성가정의 가난과 헌신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중심을 온전히 하느님께 두는 '하느님의 가난한 백성'이 되고자 했던 우리 선조 순교자들도 자신들의 가정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살아 나갔다. 나자렛 영성 생활의 출발은  나의 약함까지도 봉헌하여 내 안에 온전히 하느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고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다. 이는 성모님이 모범을 보이신 일이다. 성모님의 순종으로 강생이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강생이란 얼마나 기쁜 신비이자 기쁜 체험인가! 교회는 성가정으로 대변되는 나자렛 영성을 따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그것은 세상과는 다른 방식인 하느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예언적 차원의 영성이다.

우리 신앙 선조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전 재산을 내놓는 것은 물론 노비들을 풀어 주고 그들과 한 가족처럼 생활하면서 복음을 가르쳤다. 이런 까닭에 기근이 심해 굶어 죽는 이들이 많았을 때에도 교우촌 신자들은 끼니를 거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부족하였지만, 그 부족함 가운데서도 나눔과 배려를 생활화했기 때문이다.

교우촌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형제들과 과부, 고아들을 가장 먼저 거두었다., 이를 테면 수리산 교우촌의 최경환 회장은 가시덤불과 자갈밭을 어렵사리 개간해 곡식을 얻었어도, 그것을 교유들과 나누고, 어려운 이를 만나면 서슴지 않고 애긍을 베풀었다. 한마디로 서로가 서로에게 착한 이웃이 되어 주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이처럼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먼저 돌보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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